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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고 가는 뒷모습만 봐도.
둘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알 수 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배어나온다.


(2007-09-07)
2008/10/06 16:50 2008/10/06 16:50
Posted by & San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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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을 다니다보면 자기 닉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많다. 대부분 갖고 있다.
닉은 자기 이름을 자기가 만든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멋진 닉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참 부러웠다.
(이모티콘이나 읽지/부르지 못할 닉 제외. 이름이니 서로 불러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꼭 그 닉이 듣기에 그럴싸한 멋드러진 것일 필요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자기만의 개성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종종 가보는 '샐리의 오두막'의 샐리님.
이름은 평범한 '샐리'지만, 그 사람의 블로깅으로 그 닉은 개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알고있는 '샐리'는 참 멋진 성격의 사람이다. 그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던 만화의 등장인물의 이름을 따서 닉을 지었다고 한다.
닉의 기원은 모르지만 샐리의 오두막에서 본 '황금숲토끼'(황금 숲토끼 일까, 황금숲 토끼 일까^^), '행인1', '우유차' 등등 인상적인 닉들도 있었다.
그런 닉들을 보면서 나도 내가 좋아하면서도 나를 나타낼 수 있는 멋진 닉을 갖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웹카페에 가면 실명제가 아닌 곳은 닉을 만들게 되어있다.
매번 고민하면서도 만들긴 만들지만 딱 마음에 드는 닉이 없었다. 그래서 카페마다 다른 닉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냥이네에 가입하면서도 처음에는 '레몬지엔', 'Coffee_tree'같은 것을 사용하다가 다른 사람들을 보니 대부분 자신이 기르는 냥이의 이름을 따서 사용하고 있었다. '누구누구', '누구누구엄마', '누구누구누나' 혹은 아이가 여럿일 경우 '누구♡누구♡누구'처럼 이름을 나열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이름을 늘어놓자니 락이 하나고, 닉이 그냥 '락'도 별로고 '락이맘', '락이엄마' 같은 닉은 쓰기 싫었다.
그래도 냥이카페니까 락이랑 관련있게 만드는게 좋겠다는 생각에 락이를 보면서 닉을 고민했다.

그래서 만든 Café 樂(카페락) 이라는 닉은
Café 카페 - 락이의 커피색(밝은 크림색, 밝은 갈색, 어두운 갈색 등- 정확히는 카페라떼색) 털을 나타내고 (나도 카페라떼를 좋아하고~)
樂 락 - 은 이름이다^^

처음에는 Café 를 남들이 한 눈에 알아보지 못하게-_- 로마자를 찾아가면서 써봤는데, 첨엔 좀 멋저보였지만 그건 나 혼자 멋져하는 것이고 다른 이들은 애초에 그게 뭔지도 모르니 읽을 수도 없는 그림같은 것일 뿐이었다. 게다가 나도 로마자를 모르니 이게 맞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겉멋만 들어서 내용이 없었던 것이다.

닉의 본질은 그 글자가 멋진게 아니라 그 닉을 쓰는 사람의 개성이 멋진 것이라는 것을 아는데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 내 맘에 드는 의미와 겉모습을 갖춘 닉을 만났으니, 앞으로 이 닉이 멋진 개성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이젠 어딜 가입하게 되어도 닉 걱정은 안하게 되어 기쁘다^^ (흔한 닉도 아니니 중복될 일도 없을텐고)
2008/08/25 23:07 2008/08/25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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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할머니가 편찮으시다.
요새 갑자기가 아니라 예전부터 조금씩 안좋았던 것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대학생일 때였나 중풍에 걸리셨는데 이후 계속 악화되어 이제 치매가 진행중이다.
얼마전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안부전화를 드리다가 '할머니, 손주 보실 때까지 건강하게 사셔야죠~'라고 말씀드렸더니 '아니, 너 벌써 아기 낳았니?' 라고 되물으시다가 '그래, 넌 결혼한지 얼마 안되었잖니'라고 다시 말씀하시기도 했다. 말을 조금씩 더듬으시기도 했고.
그런데 며칠 전에 어머니랑 통화하시면서는 내 사촌 동생들이 아직 유아들인 것처럼 말씀하시더란다. 걔들이 유아이려면 10년쯤 전인데 어머니 말씀으로는 할머니께서 10년 전과 지금을 혼동할 만큼 상태가 안좋으시다고 하셨다.

이제 우리 할머니도 TV에서나 보던 같이 사는 며느리는 낯선 사람 보듯하고 자기 아들을 오래전 죽은 남편으로 착각하거나 2~30년전 일들만 기억하고 어린아이처럼 떼쓰고 소리지르는 치매할머니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그렇게 되시면 왠지 우리 할머니가 아닌 느낌이 들 것 같다. 할머니를 잃어버린 느낌말이다.
혹은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할머니는 키가 작고 통통하시다. 스무살도 안되었을 때 시집오셨다고 한다.
우리집은 아주 가난해서 할머니께서 일도 고생도 아주 많이 하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다부지고 억척스러우셨다고 한다.
그런 할머니의 젊었을 때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다정하고 순수하시다.

시골에 내려가면 '어이쿠 어이쿠'를 연발하시면서 반갑게 뛰어나오시는 할머니
우리 내려간다고 연락 받고서는 얼른 참외며 수박을 따다가 차가운 물에 담가놓으시는 할머니
분명 차가 막혀 밤에 도착한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저녁나절부터 동구밖에서 서성이며 기다리시다가 끝내 몸살이 나버리시는 할머니

많은 할머니들이 다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 할머니만 그러시는 것은 아닐지라도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만든 나의 할머니는 나에겐 더없이 소중하고 특별하다.

아직 할머니는 살아계시고(아주 건강하지는 않으셔서 차마 건강하게 계신다는 말은 못하겠다)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 우리 아이가 할머니를 기억하게 될 정도까지 오래 사실꺼다.(아마도)

그런데 엊그제 할머니 치매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어느날 갑자기 할머니가 쓰러지셨다거나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을 것만 같아 무섭다.
게다가 할머니와의 기억을 늘어놓다보니 진짜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만 같아서 쓰다가 그만 두었다.

할머니랑 함께 살지도 않고 자주 찾아뵙지도 않다보니 할머니 소식이 한번 업데이트 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아무래도 나의 시간과 할머니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나보다.
그렇다기 보다는 내 시간 흘러가는 것만 알고 할머니 시간도 나와 같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은 모르다보니 가끔 할머니 시간이 그렇게나 지나갔다는 것에 놀라는 것인 것 같다.

이럴 때 흔히 '이제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자주 드리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게다가 할머니는 전화비를 매우 아까워하신다. 아직도 전화비가 굉장히 비싸다고 생각하셔서 몇마디만 더 하려고 하면 전화비 많이 나온다면서 얼른 끊어버리신다.
그래도 전화를 자주 드리도록 노력해야겠다. 할 말이 없어도.. 인사만 하고 끊지 뭐;;

할머니께서 조금이라도 더 정정하실 때 어여 손주를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손주도 못보시고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면 정말 슬플 것 같다.
2008/07/09 16:45 2008/07/09 16:45
Posted by & SangMi

내 인생의 기준은 '개인의 안녕과 세계의 평화'이다.
거창하게 세계 운운한다기 보다는 일단 내가 평안하면 스스로 내 주위를 돌아볼 여력도 생기는 것이고 그렇게 내 주변이 평화로울 수 있도록 내가 노력한다면 그것이 세계평화를 위한 시작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평안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내 인생을 걸어왔다.
무난하게 많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편안히 살 수 있도록 말이다.
나도 돈 많이 버는 게 좋고, 높은 직위나 명예도 좋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얻으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힘들게 노력하는 것이 싫어서 내 기준으로 대강 이정도면 되었다 싶을 정도의 노력과 그에 따른 결과를 얻을 뿐이다.
지금의 내가 아주 자랑스럽다거나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하긴 어려워도 이정도면 나쁘진 않다고 본다.
난 딱 이만큼의 노력과 열정을 보였을 뿐이니 내가 한만큼 돌려받았다고 해서 억울해하면 안되지 않는가.

초등학교 6학년때 '장래희망'을 적어내면서 내가 원한다고 해서 이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내가 좀더 열정이 있었다면 누구나 원한다고 다 그 직업을 갖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 꿈을 위해 불타올라 노력해서 원하는 직업을 쟁취해야겠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그 이후로 딱히 장래희망같은 것을 꿈꾸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적어내라고 하면 적당히 그 시절에 인기있는 직업을 적어냈다. 기자나 건축가 따위..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이 때에 좀더 내 삶에 열의를 갖고 있었어야 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나는 글짓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전국대회(어떻게 출전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에서 3등인가 4등을 하기도 했고 (이때 한번뿐-_-) 고등학교때에는 근처 학교들끼리 모여서 하는 글짓기 대회에서 2등을 하기도 했다.(이것도 교내에서 의무적으로 하는 글짓기 숙제를 냈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출품되어서 나도 모르게 수상한 것이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했던 것치고 이런 글짓기 대회에 나가거나 글쓰는 훈련을 받는 것에 상당히 무지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한참 창작열에 불타올라(아무래도 사춘기) 예쁜 노트 한 권을 내가 만든 시 들로 가득 채우기도 했고, 같은 반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 받거나 일기를 나눠쓰는 일도 했다.(이런건 사춘기 소녀면 누구나 하는 일인가요? 굳이 글쓰기를 좋아하거나 창작열에 불타지 않아도-_-?) 성당 문집동아리로 활동하기도 했고.(그 문집들 다 어디갔나;;) 아무튼...

하지만 내가 대학에 들어와서 작문동아리같은 것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내가 작품이랍시고 만드는 시나 산문들이 치졸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도하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포기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 나이때에 작품을 만드는 다른 이들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없거니와 처음부터 완성된 작품을 만드는 사람도 참으로 드물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그런 부끄러운 (작품이라는 이름의) 것을 만들고 대중에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 정말 부끄러웠다. 그러나 애초에 발전할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부터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겠지.

이후 나는 내가 바라고 하고싶어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을 지라도 무난하고 평범하며 '노력하지 않는' 편한 길을 걸었다.
나는 그것이 '나의 안녕'을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노력하지 않고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니 이 어찌 편하지 아니하겠는가.
그런데 이런 기조로 거의 10년을 지내와보니 그동안 나도 모르게 빈 창고에 먼지가 쌓이듯 조금씩 켜켜이 쌓여온 무언가가 '지금의 나'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2008/07/03 16:20 2008/07/03 16:20
Posted by & SangMi
오늘은 집에 돌아와
방마다 불을 켜고 보일러를 돌리고
락이와 반가운 인사를 나눈 다음
며칠전 신랑이 사온 꽃다발을 다시 손질해서 물병에 꼽고
청소기를 슁~ 돌리고 나서 락이 밥도 주고
아침에 빨아논 이불도 널고
귤을 까먹으며 컴퓨터를 켜 웹세상을 돌아다녔습니다.

신랑은 오늘도 야근이네요.
락이는 아까 이불을 널면서 텐트처럼 만들어 줬더니 그곳에 들어가 나오질 않습니다.

회사에서 막 퇴근을 할 때는
오늘이 마침 금요일 저녁이고 퇴근도 일찍했고 영화관도 가까우니
집에 갔다가 영화를 보러가야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신랑도 같이 보고싶었지만 야근을 해야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본지도 오래되어 매우 영화가 보고싶으니
혼자라도 봐야지라며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집에 와 락이가 그릉거리면서 비벼대는걸 보고 있자니
오늘도 하루종일 혼자 집에 있었던 락이를 두고 영화를 보러가기가 미안해서 걍 눌러 앉았습니다.

그런데 영화보러 안가길 잘 한 것 같아요.
매일 퇴근해서 차갑고 어두운 집에 혼자 들어왔을 우리 신랑을
이제는 제가 밝고 따듯한 집을 만들어서 반겨줄 수 있잖아요.
(물론 신랑은 아직도 집에 못와서 영화를 보고 왔어도 제가 먼저 들어왔겠지만.)
제가 늦게 들어오는 날은 신랑이 이렇게 저를 기다려 주겠지요?

+ 빨리 이사가서 더 따듯한 집에 살고 싶어요^^;
2007/11/30 22:52 2007/11/30 22:52
Posted by & San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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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까지 마치고 온 지금.

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드레스 촬영도, 예식도, 여행도
이렇게 이렇게 하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올라온다.

다 끝나버렸는데 왜 이렇게 미련이 남는지 모르겠다.

할 수만 있으면 다시 하고 싶으네...
그럼 더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말이죠^^

2007/11/22 11:33 2007/11/22 11:33
Posted by & SangMi
Grissom: I'm sure if there's something out there 
            looking down on us from somewhere else in the universe,
            They're wise enough to stay away from us..


CSI: Crime Scene Investigation
6x04 Shooting Stars
ORIGINAL AIR DATE ON CBS: 200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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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섬은 자신의 생각보다 상대의 생각에 맞추어 대답하는 경향이 있기에
(상대가 듣기 좋은 이 아닌 상대에게 먹혀들어가는^^?)
이 말이 그리섬의 믿음에서 나왔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지만
비교적 지금까지 보아온 그리섬의 성격과는 잘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난 드라마는 거의 멍하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마지막에 그리섬이 던지는 이 한마디가 귀에 쏙 들어왔달까. (눈에 들어왔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

평소 내가 생각하는 나의 종교관을 잘 표현해준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종교관에 대해 생각해볼 일이 없었다.
나는 종교를 갖고 있고 나의 주변사람들에게 내 종교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점차로 내가 생각하는 나의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에 대해
타인에게 설명해야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 중 내게 나의 종교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은
'친한' 친구의 개종이랄까.
그녀들은 이전에도 지금도 크리스챤이기에 딱히 개종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이전에는 건성으로 믿던 예수를 교회를 바꾸면서(여의도 순복음 교회) '은혜받아' 신실히 믿게 되었으니
내가 보기엔 개종이다. 종파를 바꾸었잖아.(무언가에서 순복음으로) 알고 있듯이 신교(이하 '기독교')는 구교(이하 '카톨릭')와는 달리 수 많은 종파를 갖고 있다. 장로교, 침례교 등. 가끔 그들이 말하는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할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씩 한다.

아무튼
그녀들이 자신의 종교를 신실히 믿고 삶이 나아졌다고 말하니 축하할 일이었고 나름 축하해 주었건만
그들은 때로 나의 종교나 사상을 공격하기도 하고, '은혜받은' 신도의 말과 행동이 내가 보기엔 세뇌에 가깝기도 했다. 그들은 나의 친구이고 나름대로 '이건 좀 심하다'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가끔 말해보기도 했지만 정말 강하게 반발하더라.

나는 그들이 무엇을 믿건 그들이 좋다고 말한다면 인정해 줄 수있다. 나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선에서.
그들이 '은혜받았다'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좋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내게 삶을 주셨고 하느님께서 내 삶을 예정해 두셨으며 내가 무슨 짓을 하던 결국은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게 될테니 나는 하느님 말씀만 듣고 시키는 대로만 살겠다.'라는 것은 너무하지 않는가. 좀 주체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지.

우리나라의 종교는 대체로 기복적이다. 꼭 우리나라만 그렇겠는가만..
시험에 붙게, 취업이 되게, 병이 낫게 등 기도하면서 바라는 것이 많다.
물론 절박한 상황에 누구에겐들 부탁하고 싶지 않겠냐마는
그렇다고 신이 그것을 들어주실까?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한 기원은 안들어주시고 '하느님의 사업'을 위한 기도는 들어주시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은 인간의 삶에 손대지 않을 것이다.
2007/07/09 11:59 2007/07/09 11:59
Posted by & San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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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청각장애 사제 박민서 신부
입력: 2007년 06월 25일 18:47:06
한국 최초로 청각장애인 가톨릭 신부가 탄생한다. 다음달 6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집례로 열리는 가톨릭 서울대교구 사제서품식에서 청각장애인인 박민서 베네딕토 부제(39)가 성품성사(聖品聖事)를 받고 사제가 된다.

서품식을 앞두고 25일 기자들과 만난 박 베네딕토 부제는 “사제품을 받는 것이 개인적인 기쁨이 아니라 나와 같은 장애인들에게 기쁨과 영광이 되었으면 한다”면서 “앞으로 농아 신자들을 위한 활동을 주로 펼치겠지만 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사제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7월 부제로 서품돼 교회법에 따라 1년 동안 신부가 되기 위한 과정을 마쳤다. 청각장애인의 사제 서품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가톨릭교회에서도 그가 처음이다. 세계적으로도 미국, 영국, 스페인, 뉴질랜드, 브라질, 남아공 등에서 14명의 농아 사제가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난 박 베네딕토 부제는 3살 때 약물복용 부작용으로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됐다. 중학교까지 일반 학교를 다닌 그는 서울농학교(옛 선희학교) 고등부를 거쳐 경원전문대 산업디자인과를 나와 일반 직장에도 근무했다. 그는 고교 2학년 때 당시 신학생으로 서울 세종로 에피타주일학교에서 활발한 농아선교활동을 펼치던 서울 가톨릭농아선교회 정순오 신부(54·번동성당 주임)를 만나면서부터 사제의 꿈을 키웠다. 이날 인터뷰도 정신부의 수화 통역으로 이루어졌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 때문에 사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 절망할 때마다 정신부님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해주셨습니다. 사제가 되는 길이 험난했지만 여러분들의 기도와 도움 덕분에 서품을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1994년 정신부의 주선으로 미국유학을 떠난 그는 세계 유일의 농아종합대학인 갈로뎃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성요셉 신학교를 거쳐, 2004년 미국 성요한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 그것도 수화로 공부하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 과정에서도 정신부와 미국인 농아 사제인 토머스 콜린 신부의 도움이 컸다. 꼬박 10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가톨릭대 신학대에서 2년 반을 더 공부했다. 다른 신학생보다 2배나 시간이 걸린 공부 때문에 그는 이번 사제서품자 39명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정신부는 “점점 성숙한 모습으로 사제로서의 삶을 정립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다”면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힘든 세상을 경험한 만큼 신부가 되면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하느님 일을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서품식에는 한국 첫 청각장애인 사제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40여명의 해외 청각장애 사제, 신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1이후 7월8일 서울 번동성당에서 일반 신자를 대상으로 첫 미사를 집전하고 15일 수유동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에서 수화 미사를 집전하면서 농아 사제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는 사제 수품의 성경말씀으로 시편 35편5장을 택했다. ‘네 길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께서 몸소 해주시리라.’

〈김석종 선임기자〉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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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제가 되는 것이 참 어렵다.
하느님을 대리하여 신도들을 이끌려면 '완벽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였으리라.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사제가 되다니 매우 감격스럽다.
나의 종교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조직은 보수적이고 경직되어 있으며 배타적이 되기 쉽다.
이런 조직에 장애를 가진, 그렇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이 구성원으로 있다는 것은 조직의 유연성과 포용력을 높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당당한 큰 축이 되어 세상 관심과 손길의 사각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주는 카톨릭이 되기를 바란다.

박민서 베네딕토 신부님께서 7월 8일 번동성당에서 11시에 첫미사를 올리신다. 신부님의 첫 걸음이 자랑스럽다. 나도 오랜만에 미사에 가볼까..
2007/07/04 13:38 2007/07/04 13:38
Posted by & SangMi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요 며칠간 컨디션이 별로다.
게다가 하려고했던 일들이 줄줄이 꼬여버렸다.

누군가 회사 문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어려보이긴했는데...
누구냐며 문을 열자 무턱대고 들어와버렸다.
손에 큰 유화를 들고있는 걸보며 '설마 그림 팔러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적중.
게다가 위층 이사님도 몇개 사셨다나?
암만봐도 그림을 팔 분위기인데 말은 공부하는데 자기 그림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우린 지금 대표님이 안계서서 그림을 못사니 의견만 말해주겠다고 했지.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군대를 다녀왔는데 등록금을 낼 수가 없어서 자기 그림이랑 선배들 그림을 팔러다닌단다.
흠...
이런거 처음해보는 사람답게 용기를 내며 함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입술에 힘이 들어가고 한쪽 입가가 살짝씩 떨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아직 어린데.. 자기 그림이라지만 돈내고 사달라고 말하기 힘들겠지.
게다가 그림은 비싸다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니..
나도 사주고 싶다는 생각은 들긴 했지만 비쌀테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림값을 한 번만 물어봐달란다.
그래서 바로 물어봐주었다.

고맙단다. 보통은 물어봐달라고 말해도 물어보지 않는다고 한다. 비싸다고 생각하니까..

근데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내가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던걸까?
재료비만 받겠다더라.
어차피 학생이고 그림에 부가가치를 붙이기는 힘들었을테지.

물감, 캔버스, 액자 어쩌고 하더니 27000원.
솔직히 조금 놀랐다. 정말 재료비만 부를 줄이야..
액자값만해도 반은 넘어보이는데..

생각보다 싸군. 마음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도와주고싶은 마음은 진즉에 들었으니, 하나 사볼까?

자기가 그렸다며 설명해주는 그림도 괜찮아보였고, 팔려는 사람답게 유화는 오~래 보존되는 그림이며(모나리자와 천지창조를 들먹이더군^^;) 선물할 땐 나를 그만큼 오래 기억해달라는 의미가 있는 말을 붙였다. 난 그런건 별로 개의치 않는데.

요즘 카드깡을 열심히 해서 수중에 현금이 넉넉했다. 불안할 정도로. 난 평소엔 현금을 1~2만원 정도만 들고 다니니까. 그 이상은 불안하다. 뭐 딱히 필요도 없고.
암튼,
그래도 그림을 사는 건데 재료비만 낼 수는 없지. 사정이 딱하기도 하고.
해서 내가 책정한 그림값은 5만원. 인건비까지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챙겨서 가니 가방에서 다른 그림들도 꺼내보이더라.
처음에 보여준 그림은 화병에 푸른색 데이지가 꼽혀있는 정물이었는데(푸른 데이지는 존재하지 않지만 지적인 여인의 이미지를 투영하기 위해 푸른색으로 그렸단다) 다시 가보니 배와 태양이 있는 풍경화도 보여주었다. 풍경이라기엔 추상에 가까웠지만. 배가 거친 밤바다를 인내하고 나면 밝은 태양이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다는 느낌으로 제목도 '일출'. 어둡고 거친 느낌의 색감괴 대비되면서 주홍색 태양빛이 비쳐온다. 밝고 선명한 주홍색은 거친 배와 어울리지 않고 분리돼 보이면서도 밝은 빛이 주변으로 퍼져가리라는 희망으로 보이기도 한다.

내가 유화를 멋있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덧그리기나 물감을 뭉텅이로 써서 약간의 입체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데 있다.
푸른 데이지의 정적이면서 우아한 느낌도 좋았지만 약간 평범해보이기도 했고
어두워보이면서도 밝은 느낌이 공존하는 배와 태양의 그림이 좀더 멋있어보였다.

그림뒷면에 이름과 싸인도 받고 (누가 그렸는지 알아야지)
고마웠는지 내 명함을 받아가면서 나중에 전시를 하게되면 연락한다더라.

난 비교적 저렴한 값에 그림도 사고, 안타까운 고학생(예술인?)을 도와줬다는 뿌듯함도 얻었지만
내 돈이 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른지는 의문이다.

그가 말했듯이 등록금을 벌기 위해 그림을 팔고 다니는 거라면서
그가 나에게 제시했던 금액으로 그 그림들을 판다면 그는 몇백장의 그림을 팔아야할지 알 수 없다.
정말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라면 한 학기를 휴학하더라도 좀더 돈이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장기간 풀타임으로 일한다면 고액을 벌 수있는 아르바이트들이 꽤 있으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노리는 것은 그 후의 일이겠지.
자신의 그림 이외에 다른 친구들의 그림도 함께 들고다니면서 파는 것같았는데
그 그림은 친구들이 무상으로 그에게 기증한 걸까?
그 정도로 친구들과 의논을 했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걸까?
혹은 그런 것보다는 이미 그려논 그림을 팔며 다니는 것이 조금 부끄럽더라도 손쉽게 돈을 버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걸까?
자신은 이미 예술인이니 돈을 벌기 위해서는 다른 알바보다 자신의 작품을 파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던걸까?
궁금하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그림이 앞으로 10배 100배의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삼육대학교 서양화과 학생이다.
예술계에서도 학벌은 중요하다.
일찌감치 유학을 가서 남다른, 현재의 패러다임을 깰 수 있는 획기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면
그가 말했던 성공은 조금 어렵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나의 적은 돈과 몇 마디 말이 현재의 그에게 진심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07/01/05 12:29 2007/01/05 12:29
Posted by & San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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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재순오빠의 쁘다를 빼앗아서 출퇴근길 열심히 '환상의 커플'을 보고있다.
상실이의 매력에 푹~ 빠져^^
출퇴근길이 지루하지 않다.

기억을 잃고 갈 곳없는 상실이를 보살펴주는 장철수.
어느날 갑자기 장철수가 없어져서 놀라고 당황하고 찾으러 거리로 나온 상실이.
놀람에서 당황으로 그리고 두려움과 슬픔으로 점점 번져가는 감정이
음악을 타고 나의 마음에 파고 들었다.

"장철수~ 장철수~"
열심히 모르는 거리를 헤메며 장철수를 부르는 상실이.
장철수는 어디로 간걸까, 정말 나를 버린걸까...

장철수는 다만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이었다.
다시 만난 장철수에게 상실이는 장철수 옷을 꼭 잡고
"없어지지마. 나 버리지마."
라고 단호히 그러나 간절하게 말했다.


아...
정말 너무 슬펐다. 눈물이 날 뻔 한 장면이다.
상실이는 "장철수~"라고 부르며 찾아다녀볼 수도 있고
"나 버리지마"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말 한마디 못하는 또는 할 기회조차 없었던
많은 아이들, 아기들, 동물친구들...

그렇게 버려지는 아이들이 떠올랐다.
버려지는 신생아들..
엄마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저 누워서 울기만 하는 아기들..
주인이 없어져도 자기를 버리는 것인지 모르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불쌍한 동물들..

"나 버리지마"라는 한 마디를 얼마나 하고싶을까


상실이는 좋겠다. 장철수가 다시 찾으러 와서...

2007/01/04 18:04 2007/01/04 18:04
Posted by & Sang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