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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1/05 그림을 사다. (1)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요 며칠간 컨디션이 별로다.
게다가 하려고했던 일들이 줄줄이 꼬여버렸다.

누군가 회사 문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어려보이긴했는데...
누구냐며 문을 열자 무턱대고 들어와버렸다.
손에 큰 유화를 들고있는 걸보며 '설마 그림 팔러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적중.
게다가 위층 이사님도 몇개 사셨다나?
암만봐도 그림을 팔 분위기인데 말은 공부하는데 자기 그림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우린 지금 대표님이 안계서서 그림을 못사니 의견만 말해주겠다고 했지.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군대를 다녀왔는데 등록금을 낼 수가 없어서 자기 그림이랑 선배들 그림을 팔러다닌단다.
흠...
이런거 처음해보는 사람답게 용기를 내며 함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입술에 힘이 들어가고 한쪽 입가가 살짝씩 떨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아직 어린데.. 자기 그림이라지만 돈내고 사달라고 말하기 힘들겠지.
게다가 그림은 비싸다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이니..
나도 사주고 싶다는 생각은 들긴 했지만 비쌀테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림값을 한 번만 물어봐달란다.
그래서 바로 물어봐주었다.

고맙단다. 보통은 물어봐달라고 말해도 물어보지 않는다고 한다. 비싸다고 생각하니까..

근데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내가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던걸까?
재료비만 받겠다더라.
어차피 학생이고 그림에 부가가치를 붙이기는 힘들었을테지.

물감, 캔버스, 액자 어쩌고 하더니 27000원.
솔직히 조금 놀랐다. 정말 재료비만 부를 줄이야..
액자값만해도 반은 넘어보이는데..

생각보다 싸군. 마음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도와주고싶은 마음은 진즉에 들었으니, 하나 사볼까?

자기가 그렸다며 설명해주는 그림도 괜찮아보였고, 팔려는 사람답게 유화는 오~래 보존되는 그림이며(모나리자와 천지창조를 들먹이더군^^;) 선물할 땐 나를 그만큼 오래 기억해달라는 의미가 있는 말을 붙였다. 난 그런건 별로 개의치 않는데.

요즘 카드깡을 열심히 해서 수중에 현금이 넉넉했다. 불안할 정도로. 난 평소엔 현금을 1~2만원 정도만 들고 다니니까. 그 이상은 불안하다. 뭐 딱히 필요도 없고.
암튼,
그래도 그림을 사는 건데 재료비만 낼 수는 없지. 사정이 딱하기도 하고.
해서 내가 책정한 그림값은 5만원. 인건비까지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금액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챙겨서 가니 가방에서 다른 그림들도 꺼내보이더라.
처음에 보여준 그림은 화병에 푸른색 데이지가 꼽혀있는 정물이었는데(푸른 데이지는 존재하지 않지만 지적인 여인의 이미지를 투영하기 위해 푸른색으로 그렸단다) 다시 가보니 배와 태양이 있는 풍경화도 보여주었다. 풍경이라기엔 추상에 가까웠지만. 배가 거친 밤바다를 인내하고 나면 밝은 태양이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다는 느낌으로 제목도 '일출'. 어둡고 거친 느낌의 색감괴 대비되면서 주홍색 태양빛이 비쳐온다. 밝고 선명한 주홍색은 거친 배와 어울리지 않고 분리돼 보이면서도 밝은 빛이 주변으로 퍼져가리라는 희망으로 보이기도 한다.

내가 유화를 멋있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덧그리기나 물감을 뭉텅이로 써서 약간의 입체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데 있다.
푸른 데이지의 정적이면서 우아한 느낌도 좋았지만 약간 평범해보이기도 했고
어두워보이면서도 밝은 느낌이 공존하는 배와 태양의 그림이 좀더 멋있어보였다.

그림뒷면에 이름과 싸인도 받고 (누가 그렸는지 알아야지)
고마웠는지 내 명함을 받아가면서 나중에 전시를 하게되면 연락한다더라.

난 비교적 저렴한 값에 그림도 사고, 안타까운 고학생(예술인?)을 도와줬다는 뿌듯함도 얻었지만
내 돈이 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른지는 의문이다.

그가 말했듯이 등록금을 벌기 위해 그림을 팔고 다니는 거라면서
그가 나에게 제시했던 금액으로 그 그림들을 판다면 그는 몇백장의 그림을 팔아야할지 알 수 없다.
정말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라면 한 학기를 휴학하더라도 좀더 돈이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장기간 풀타임으로 일한다면 고액을 벌 수있는 아르바이트들이 꽤 있으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노리는 것은 그 후의 일이겠지.
자신의 그림 이외에 다른 친구들의 그림도 함께 들고다니면서 파는 것같았는데
그 그림은 친구들이 무상으로 그에게 기증한 걸까?
그 정도로 친구들과 의논을 했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걸까?
혹은 그런 것보다는 이미 그려논 그림을 팔며 다니는 것이 조금 부끄럽더라도 손쉽게 돈을 버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걸까?
자신은 이미 예술인이니 돈을 벌기 위해서는 다른 알바보다 자신의 작품을 파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던걸까?
궁금하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그림이 앞으로 10배 100배의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삼육대학교 서양화과 학생이다.
예술계에서도 학벌은 중요하다.
일찌감치 유학을 가서 남다른, 현재의 패러다임을 깰 수 있는 획기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면
그가 말했던 성공은 조금 어렵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나의 적은 돈과 몇 마디 말이 현재의 그에게 진심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2007/01/05 12:29 2007/01/05 12:29
Posted by & Sang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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