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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09 할머니 (3)
요즘 할머니가 편찮으시다.
요새 갑자기가 아니라 예전부터 조금씩 안좋았던 것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대학생일 때였나 중풍에 걸리셨는데 이후 계속 악화되어 이제 치매가 진행중이다.
얼마전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안부전화를 드리다가 '할머니, 손주 보실 때까지 건강하게 사셔야죠~'라고 말씀드렸더니 '아니, 너 벌써 아기 낳았니?' 라고 되물으시다가 '그래, 넌 결혼한지 얼마 안되었잖니'라고 다시 말씀하시기도 했다. 말을 조금씩 더듬으시기도 했고.
그런데 며칠 전에 어머니랑 통화하시면서는 내 사촌 동생들이 아직 유아들인 것처럼 말씀하시더란다. 걔들이 유아이려면 10년쯤 전인데 어머니 말씀으로는 할머니께서 10년 전과 지금을 혼동할 만큼 상태가 안좋으시다고 하셨다.

이제 우리 할머니도 TV에서나 보던 같이 사는 며느리는 낯선 사람 보듯하고 자기 아들을 오래전 죽은 남편으로 착각하거나 2~30년전 일들만 기억하고 어린아이처럼 떼쓰고 소리지르는 치매할머니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그렇게 되시면 왠지 우리 할머니가 아닌 느낌이 들 것 같다. 할머니를 잃어버린 느낌말이다.
혹은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할머니는 키가 작고 통통하시다. 스무살도 안되었을 때 시집오셨다고 한다.
우리집은 아주 가난해서 할머니께서 일도 고생도 아주 많이 하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다부지고 억척스러우셨다고 한다.
그런 할머니의 젊었을 때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다정하고 순수하시다.

시골에 내려가면 '어이쿠 어이쿠'를 연발하시면서 반갑게 뛰어나오시는 할머니
우리 내려간다고 연락 받고서는 얼른 참외며 수박을 따다가 차가운 물에 담가놓으시는 할머니
분명 차가 막혀 밤에 도착한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저녁나절부터 동구밖에서 서성이며 기다리시다가 끝내 몸살이 나버리시는 할머니

많은 할머니들이 다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 할머니만 그러시는 것은 아닐지라도
나와 많은 시간을 함께 만든 나의 할머니는 나에겐 더없이 소중하고 특별하다.

아직 할머니는 살아계시고(아주 건강하지는 않으셔서 차마 건강하게 계신다는 말은 못하겠다)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 우리 아이가 할머니를 기억하게 될 정도까지 오래 사실꺼다.(아마도)

그런데 엊그제 할머니 치매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어느날 갑자기 할머니가 쓰러지셨다거나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을 것만 같아 무섭다.
게다가 할머니와의 기억을 늘어놓다보니 진짜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만 같아서 쓰다가 그만 두었다.

할머니랑 함께 살지도 않고 자주 찾아뵙지도 않다보니 할머니 소식이 한번 업데이트 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아무래도 나의 시간과 할머니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나보다.
그렇다기 보다는 내 시간 흘러가는 것만 알고 할머니 시간도 나와 같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은 모르다보니 가끔 할머니 시간이 그렇게나 지나갔다는 것에 놀라는 것인 것 같다.

이럴 때 흔히 '이제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자주 드리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게다가 할머니는 전화비를 매우 아까워하신다. 아직도 전화비가 굉장히 비싸다고 생각하셔서 몇마디만 더 하려고 하면 전화비 많이 나온다면서 얼른 끊어버리신다.
그래도 전화를 자주 드리도록 노력해야겠다. 할 말이 없어도.. 인사만 하고 끊지 뭐;;

할머니께서 조금이라도 더 정정하실 때 어여 손주를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손주도 못보시고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면 정말 슬플 것 같다.
2008/07/09 16:45 2008/07/09 16:45
Posted by & SangMi